노인마다 다른 인지 저하 속도… ‘세포 생체시계’가 해석 열쇠 될까
피부세포에서 측정한 고유 리듬, 뇌 위축·알츠하이머 지표와 연관성 확인

노화는 동일한 방향으로 진행되지만, 그 속도는 개인마다 다르다. 같은 연령대에서도 어떤 이는 비교적 온전한 인지 기능을 유지하는 반면, 어떤 이는 빠르게 기억력과 판단력이 저하된다. 이러한 차이를 설명할 새로운 단서로 ‘세포 고유의 생체시계’가 주목받고 있다.
아주대병원 연구팀은 고령자의 피부세포에서 측정한 생체시계 특성이 뇌 노화 및 알츠하이머병 관련 변화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해당 연구는 국제 학술지 PNAS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에 게재됐다.
‘생활 리듬’ 넘어, 세포 자체의 시간 구조 분석
생체시계는 수면과 각성, 호르몬 분비, 대사 활동 등 신체의 하루 주기를 조절하는 내부 시스템이다.
그동안 알츠하이머 환자에서 수면장애나 생활 리듬 붕괴가 흔히 관찰된다는 점에서, 생체시계 이상이 질환과 관련 있다는 가설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그러나 기존 연구 대부분은 수면 패턴이나 활동량과 같은 ‘행동 수준의 리듬’에 초점을 맞췄다.
반면, 세포 자체가 지닌 고유한 생체시계가 개인마다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이러한 차이가 실제 뇌 구조와 기능 변화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충분히 규명되지 않았다.
연구팀은 이 점에 주목해, 생활 습관이 아닌 ‘세포 내부의 시간’을 직접 측정하는 접근을 시도했다.
피부세포로 측정한 생체시계, 뇌 영상·혈액 지표와 비교
연구는 인지 저하를 호소하는 고령자 135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연구진은 대상자의 피부에서 섬유아세포를 채취해 배양한 뒤, 세포의 생체시계 주기—즉 한 바퀴를 도는 시간이 24시간에서 얼마나 벗어나는지를 정량화했다.
이후 해당 데이터를 아밀로이드 PET, 뇌 MRI, 인지기능 검사, 임상 경과와 비교했으며, 혈액 내 알츠하이머 관련 지표와 신경 손상 및 염증 지표와의 연관성도 함께 분석했다.
주기 길수록 신경 손상·염증 지표 높아
분석 결과, 세포의 생체시계 주기가 길수록 알츠하이머 관련 단백질(pTau217), 신경 손상 지표(NfL), 뇌 염증 지표(GFAP) 수치가 모두 높은 경향을 보였다.
또한 뇌 영상에서는 알츠하이머와 관련된 특정 부위의 위축과도 유의한 연관성이 확인됐다.
한편, 생체시계 주기가 24시간과 크게 어긋날수록 연령이 높고 전반적인 인지 기능이 낮았으며, 보다 광범위한 뇌 위축과 관련되는 경향도 나타났다. 이는 생체시계의 ‘지연’과 ‘불일치’가 서로 다른 방식으로 뇌 노화를 반영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생체시계 이상, 질환 진행 속도와도 연결
추적 관찰이 가능했던 119명을 대상으로 한 분석에서는 임상적 경과와의 연관성도 확인됐다. 세포의 생체시계 주기가 길거나 24시간과의 차이가 큰 경우, 인지 기능 저하가 더 빠르게 진행되는 경향이 나타났다.
이는 세포 수준의 생체시계 지표가 단순한 생리적 특징을 넘어, 질환의 진행 속도를 예측하는 데 활용될 가능성을 보여준다.
기존 연구와 차별점… “환경 아닌 세포 내부 요인”
이번 연구는 기존 생체리듬 연구와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예컨대 Harvard Medical School 연구진은 수면-각성 리듬이 불규칙할수록 알츠하이머 위험이 증가한다고 보고한 바 있으며, 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 연구에서는 깊은 수면 감소가 베타아밀로이드 축적과 관련이 있다는 결과가 발표된 바 있다.
이들 연구는 주로 외부 환경이나 생활 습관에 의해 영향을 받는 생체리듬의 변화를 다뤘다. 반면 이번 연구는 세포 자체에 내재된 생체시계 특성을 직접 측정해, 인지 저하와의 연관성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개인 맞춤형 치료 전략 가능성 제시
연구진은 이번 결과가 향후 개인 맞춤형 치료 전략 수립에 기여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같은 인지 저하를 보이더라도, 그 배경이 되는 뇌 변화는 개인마다 다를 수 있다. 이때 세포 수준의 생체시계 정보는 이러한 차이를 해석하는 데 새로운 기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향후에는 개인의 생체시계 특성에 맞춘 수면 관리, 활동 시간 조절 등 ‘시간 기반 치료 전략’으로 확장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초기 연구 단계… 추가 검증 필요”
다만 연구진은 이번 결과가 연관성을 확인한 초기 연구라는 점을 강조했다. 세포 생체시계가 어떤 생물학적 기전을 통해 뇌 노화와 질환 진행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대규모 연구와 장기 추적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이번 연구는 노화와 인지 저하를 바라보는 관점에 변화를 제시한다. 생활 습관이나 환경 요인을 넘어, 세포 내부에 존재하는 ‘시간의 구조’가 개인의 뇌 건강을 좌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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