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헬스케어법 입법 본격화 “데이터 활용보다 안전·책임 설계가 먼저”
정부, 건강정보 활용·전송요구권 제도화 추진…의료계·시민사회 “통제권·보상·공공성 보완해야”

인공지능(AI) 기반 진단과 맞춤형 치료, 의료데이터 연구가 빠르게 확산하면서 이를 뒷받침할 디지털헬스케어법 제정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다만 법제화 필요성에는 대체로 공감대가 형성됐지만, 민감한 보건의료정보를 누가 어떤 기준으로 활용하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 누가 책임질지를 두고 의료계·산업계·시민사회 간 견해차는 여전했다.
더불어민주당 서영석 의원실과 보건복지부는 22일 국회의원회관에서 ‘디지털 헬스케어 및 보건의료정보 활용 지원에 관한 법률’ 제정을 위한 공청회를 열고 법안의 주요 내용과 보완 과제를 논의했다.
법안은 흩어져 있는 보건의료정보 관련 제도를 정비하고, 국가 차원의 데이터 활용 기반을 마련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5년 단위 기본계획 수립, 정책심의위원회 운영, 보건의료정보심의위원회(DRB) 설치, 전자의무기록 표준화와 인증, 건강정보 전송요구권 등이 핵심이다.
기존에 개별적으로 운영되던 디지털헬스케어 시범사업과 규제 샌드박스도 복지부 관리 체계 안에서 통합 운영하는 방안이 담겼다.
정부는 법안이 무분별한 정보 개방이 아니라 안전한 활용을 위한 최소한의 법적 기반이라고 설명한다. 최경일 복지부 의료정보정책과장은 정신질환과 유전질환 등 민감성이 높은 정보에는 별도 동의 절차를 두고, 의사가 진료 과정에서 작성한 주관적 임상 기록은 전송 대상에서 제외된다고 밝혔다.
건강정보 고속도로, 진료정보교류시스템, 건강보험 청구기록처럼 표준화된 정보 중심으로 활용 범위를 제한한다는 입장이다.
학계는 지금처럼 개인정보보호법, 생명윤리법, 인공지능기본법 등 여러 법률에 관련 규정이 나뉘어 있는 체계로는 현장 혼선을 줄이기 어렵다고 본다.
김재선 동국대 법과대학 교수는 의료 AI와 신약 개발 경쟁이 빨라지는 상황에서 가이드라인만으로는 연구자와 기업, 의료기관이 따라야 할 기준을 명확히 하기 어렵다며 별도 법률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의료계는 데이터 활용 자체보다 활용 이후의 통제와 책임 문제를 우려했다. 의료기관 밖으로 정보가 이동한 뒤 재식별이나 오·남용 문제가 발생했을 때 책임 주체가 불명확하고, 의료진이 진료정보의 전송과 활용을 검토할 권한도 충분히 보장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한약사회는 민간 서비스 확대보다 의료기관 간 안전한 정보 연계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고, 대한의사협회는 환자가 포괄적으로 정보 전송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와 의료진의 통제권을 제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료기관의 비용 부담과 보상 체계도 쟁점으로 떠올랐다. 병원들이 데이터를 표준화하고 추출·연계하는 과정에는 인력과 시스템 비용이 발생하지만, 이를 보전할 장치가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산업계 역시 데이터의 가치 산정 기준과 의료기관 참여를 유도할 인센티브가 마련돼야 실제 현장에서 제도가 작동할 수 있다고 봤다.
환자·소비자단체와 시민사회는 정보주체의 권리와 공공성 보완을 주문했다. 의료데이터 활용이 치료와 연구라는 공익적 목적을 넘어 민간 산업의 수익 모델로 기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제공 거부권과 동의 철회권, 재식별 위험에 대한 대응, 데이터 활용 수익의 환원 방식 등을 법안 심사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다뤄야 한다는 주장이다.
디지털헬스케어법은 의료데이터 활용의 속도와 안전장치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정부가 국가 주도 인프라와 표준화 체계 마련에 방점을 찍는다면, 국회 논의에서는 환자 권리, 의료진·의료기관의 통제권, 책임 귀속, 비용 보상과 공공성까지 함께 설계해야 법안의 사회적 신뢰를 확보할 수 있을 전망이다.
구재회 기자 /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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