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지 못하는 사람은 고장 난 걸까

도움말: 정혜인 플리마인드 대표

▲ 일을 멈춘 순간 불안이 밀려오는 사람들에게, 쉼은 휴식보다 더 어려운 과제가 된다. [사진=AI 생성이미지]

소위 유능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묘하게 닮은 구석을 갖고 있다.

사실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명이다.

또 가끔은 시즌처럼 반복되는 문제여서 이건 뭘까 하고 의문을 갖게 된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 묘하게 닮아서 한 사람처럼 느껴지는 것이 나의 문제인가 하는 질문도 하게 된다.

그들이 처음 하는 말들 중에 “쉬는 법을 좀 알려주세요.”가 있다.

어디선가 번아웃이라는 진단을 받고, 의사에게 휴식을 처방받았는데, 그 휴식이 도무지 되지 않아서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고 이야기한다.

또 어떤 분에게 회사에 휴가를 내고, 잠시 쉬어보시라고 권고했더니 사흘쯤 뒤에 더 불안해져 힘들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가만히 있으니 견딜 수가 없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것이 의지의 문제처럼 보였다.

쉴 줄을 모르는 사람…….

그러나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그것과는 정반대라는 걸 알게 된다.

그들은 쉬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멈추는 순간 올라오는 무언가를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일을 손에서 놓으면 곧장 뒤따라오는 생각들이 있다.

“나는 뒤처지고 있다.

과연 이래도 되는 걸까?

난 일하는 게 쉬는 건데…….

쉬고 있는 내가 한심하다.”

일은 그 생각을 덮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그들이 바빠지면 그 목소리가 잠시 뒤로 물러나서 꺼진다.

그래서 다시 일로 돌아가게 된다.

쉼이 불안을 부르고 일이 안도를 주는 이 회로가, 한번 돌기 시작하면 좀처럼 멈추지 않는다.

한 발 더 들어가면 더 무거운 무언가가 보인다.

그에게 일은 단지 불안을 막는 도구가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유일한 방식이라는 것이다.

“아무것도 안 하는 나는 쓸모없는 사람 같아요.”

무언가를 해내야만 자신이 괜찮은 사람이 되면, 쉬지 않는 것이 아니라 쉴 수가 없게 된다.

멈추는 일이 곧 자기가 사라지는 일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신체도 거기에 가담한다.

오래 긴장한 신경계는 브레이크를 거는 방법을 잊어버린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침대에 누우면 심장은 더 빨리 뛰고, 모처럼 떠난 휴가에서 편안한 잠자리가 주어져도 잠시 책상에 누워 기댈 때보다도 잠을 설친다.

고요가 편안함이 아니라 위협으로 읽히게 된다.

여기까지 오면 우리는 일반적으로 이 사람을 고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쉬는 법을 가르치고, 이완을 훈련시키고, 마음 챙김을 권한다.

나도 오랫동안 그렇게 해왔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의심이 들었다.

정말 고장 난 것이 이 사람일까?

정신분석가 카렌 호나이는 신경증은 개인의 결함이 아니라 그 시대의 문화가 한 사람 안에 남긴 흔적이라고 했다.

끊임없이 더 해야 하고, 더 나아가야 하고, 멈춰서는 안 된다고 자신을 몰아세우는 내면의 명령을 그는 ‘당위의 폭정’이라고 불렀다.

정말로 무서운 것은 이 명령을 강요하는 사람이 외부 어딘가에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더 하고, 쉬면서도 죄책감을 느끼고, 멈추는 자신을 스스로 닦달한다.

경쟁과 성취를 미덕으로 떠받드는 문화를 호흡하며 자란 우리들에게, 그 당위는 외부의 규칙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목소리처럼 들린다.

이 구조 안에서 쉬지 못하는 사람은 사실 가장 성실하게 시대에 적응한 사람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만약 그를 환자로만 본다면 어쩌면 절반의 진실만 보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의 내담자들에게 점점 조심하게 되는 말이 있다.

“좀 푹 쉬시면 좋겠습니다.”

힘들고 지친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이야기여서 나온 말이지만, 쉼을 또 하나의 과제로 만들어 그를 더 다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잘 쉬어야 한다는 압박만큼 쉼에서 먼 것도 없다.

그래서 요즘 나는 쉼을 조금 다르게 정의해본다.

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다.

무언가 함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기를 잠시 멈추는 일이다.

일을 하지 않아도 내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짧게나마 확인하는 시간이다.

그 확인이 쌓여야 비로소 사람은 멈출 수 있다.

쉬지 못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쉬는 기술이 아닐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신을 곁에서 견뎌줄 누군가와 그래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세상이 아쉽지만 우리에게 부재해 있다.

안타깝지만 우리는 아직 그런 세상에 살고 있지 않다.


[프로필] 정혜인

심리학자 출신의 그는 국내 최초로 온라인 심리지원 전문 기업 '플리마인드(https://www.plymind.com/)'를 설립하며 주목을 받았다.


플리마인드는 정신건강 상태를 스스로 진단하고 모니터링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하고, 자가 정신건강 관리를 위한 다양한 콘텐츠 제작에 주력하고 있다.

현재 그는 주식회사 플리마인드의 대표를 맡고 있으며, 사단법인 한국심리건강진흥원 이사장으로서 정신건강 증진을 위한 공익 활동에도 힘쓰고 있다. 또한 서울사이버대학교 겸임교수로 활동하며 후학 양성에도 기여하고 있다.

이 외에도 한국IT여성기업인협회 수석부회장으로서 여성 기업인의 성장을 지원하고 있으며, AI윤리협의체 의장으로서 인공지능 시대의 윤리적 가치 정립을 위한 논의에도 앞장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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