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인 플리마인드 대표, 꾸물거림의 심리학

  • 구재회 기자
  • 발행 2025-09-29 11:04



도움말: 정혜인 심리학자(플리마인드 대표)

꾸물거림은 왜 생기는가

꾸물거리거나 미루는 습관에도 심리학적인 이론이 숨어 있을까?
만약 이론이 있다면 그것을 고칠 수는 있는 것일까?
꾸물거림이나 미루는 습관과 관련해서는 정말 많은 이들이 궁금증을 갖는다. 사실 이 글을 쓰는 필자 역시도 가끔 턱 끝까지 미루는 행동을 하곤 한다.

꾸물거림이나 미루는 습관에는 심리학적 배경이 숨어 있다. 많은 사람들은 습관이 한번 자리 잡으면 고칠 수 없다고 생각하거나, 고칠 수 있더라도 평범한 사람에게는 어려운 일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습관은 학습 과정을 통해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만들어진 방식과 원리를 알면 개선의 여지가 있다.

심리학적으로 습관은 조건형성과 자기조절 과정에서 비롯된다. 처음에는 의도적인 노력이 필요하지만, 반복될수록 의식적인 개입은 줄어들고 자동적 반응으로 자리 잡는다.

특정 시간, 장소, 감정 같은 단서가 주어지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특정 행동을 하고, 그 행동이 주는 만족감이나 쾌감이 보상으로 작용하면서 다시 같은 행동을 반복하게 된다. 꾸물거림이나 미루는 행동도 편안함이나 안정감을 주는 경험과 연결되어 반복되면 습관으로 굳어진다.

신경과학적으로는 기저핵이 습관을 관리한다. 새로운 행동은 처음에는 전두엽의 통제를 거치지만, 반복되면 기저핵 회로가 강화되면서 자동화된다. 이때 도파민은 보상 신호로 작용해 같은 행동을 다시 하도록 강화한다.

습관이 형성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개인과 상황에 따라 다르며, 간단한 행동은 18일 정도면 가능하지만 복잡하거나 어려운 행동은 200일 이상 걸리기도 한다. 습관은 반복의 빈도, 맥락의 일관성, 즉각적인 보상이 얼마나 안정적으로 주어지는가에 따라 강도가 달라진다.

꾸물거림, 언제 심해질까

그렇다면 우리는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할 필요가 있다. 나의 꾸물거리거나 미루는 행동이 첫째, 항상 그렇게 되는 것인지, 둘째, 어떤 특정 행동들에만 정해져 있는 것인지, 마지막으로 어떤 시기에 특히 그러한 행동이 더 생겨나는지이다. 위에 제시한 질문에 따라 우리의 꾸물거리거나 미루는 행동은 심리적인 기저가 조금씩 다를 수 있다.

위에 질문한 내용을 정리하면 항상성, 특정 과제, 특정 시기라는 세 가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먼저 생활 전반에서 꾸물거림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면 이것은 기본적인 자기조절력의 부족이나 실행 기능 저하와 관련이 있을 수 있다.

자기조절 실패 이론에 따라서 전두엽과 같이 자기통제와 계획 수립을 담당하는 뇌 기능이 본질적으로 약하거나, 만성적인 스트레스와 우울이 동반될 때 꾸물거림이 자주 발생하게 된다. 또한 성격적 요인으로도 설명할 수 있는데, 어릴 때부터 지속적으로 미루는 경향이 있다면 Big Five 성격 요인 중 성실성이 낮은 특성과의 연관성이 높다.

만약 특정한 과제에서만 꾸물거림이 나타나는 경우라면 감정 회피나 완벽주의와 관련성이 높다. 실패, 비난, 부담감이 예상되는 상황에서는 불안을 피하기 위해 미루기가 심해지고,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 역시 특정 행동을 회피하게 만든다.


▲ 꾸물거림은 생활 전반, 특정 과제, 특정 시기 중 어디서 나타나느냐에 따라 원인이 달라지며, 생활 전반에서 반복된다면 자기조절력 부족과 관련이 있다. [사진=셔터스톡]

이때 자기효능감마저 낮다면, 즉 자신이 과제를 잘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이 부족하다면 어려운 과업에서만 꾸물거리는 행동이 두드러지게 나타날 수 있다. 이것은 대표적인 예시로는 평소에 시험준비를 잘 하지 못했는데 전날 영화를 보는 행동을 선택하는 것과도 연결될 수 있다.

또 다른 맥락은 특정 시기나 상황에서 꾸물거림이 심해지는 경우다. 기분조절 이론에서 살펴볼 때 스트레스, 우울, 불안 같은 부정적 정서가 상승할 때 사람들은 순간적인 기분 완화를 위해 미루는 행동을 선택한다고 설명한다.

또한 시간적 동기 이론(TMT)에 따르면 마감이 멀면 멀수록 미루는 행동이 더 쉽게 나타나며, 마감이 다가올수록 동기가 급격히 올라가는 이른바 ‘데드라인 효과’가 생긴다. 마치 시험 전날 벼락치기가 효과적인 성적을 낼 수 있다고 하는 것과 같다.

미루는 습관, 어떻게 바꿀까

꾸물거림과 미루기가 어떤 단일한 원인으로 설명되기는 어렵다. 기본 성향이나 자기조절력의 문제, 특정 과제와 연결된 감정적 요인, 시기적·상황적 동기 요인이 서로 얽히면서 나타나는 복합적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꾸물거림이나 미루기는 고칠 수는 없는 것일까?

꾸물거림과 미루기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인지, 정서, 행동을 종합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먼저 인지적 측면에서는 큰 과제를 작은 단위로 쪼개기를 하면, 시작에 대한 부담을 줄이고 착수를 용이하게 만든다. 또한 “완벽해야 한다” 같은 비합리적 신념을 현실적인 수준에서 교정하고, 해야 할 일을 시각적으로 구조화하면 압박감이 완화될 수 있다.

최근 어떤 특정 A가 세 과목을 시험봐야 하는데 어떤 과목도 제대로 학습하지 못했다고 했다. 가장 자신 있는 과목에서 평균점을 올리고, 나머지 두 과목은 과락만 면하자는 전략을 세워 주었다.

정서 조절 차원에서는 자기비난 대신 자기 자비의 태도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며, 운동이나 마음챙김을 통해 불안을 낮추는 것도 도움이 된다. 즉 하기 싫은 일을 시작했으니 얼마나 다행이냐는 안도감이나 성취감을 의도적으로 강조하면서 보상을 재구조화시키면 행동을 지속하는 데 유리하다.


행동적 전략으로는 매일 일정한 시간과 공간에서 작업을 시작하는 ‘착수 의식’을 만들고, 포모도로 기법처럼 집중과 휴식을 번갈아 적용하면 꾸물거림을 줄일 수 있다. 환경을 단순화하고 미루는 단서를 차단하는 것도 효과적이다. 공부하거나 일하는 장소를 정해놓고, 그 장소를 최대한 간단하게 만들고, 공부하고 쉬기를 반복하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동기 강화를 위해서는 작은 행동에도 즉각적인 보상을 주고, 실제 마감 전에 스스로 작은 마감을 설정해서 ‘데드라인 효과’를 활용하는 방법이 있다. 또한 작은 성공 경험을 축적하면서 자기효능감을 높여가는 것도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사회적 자원을 활용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누군가에게 진행 상황을 공유하며 검사를 맡는 것이나, 상담과 코칭을 통해 자기조절 전략을 훈련하는 것도 효과가 있다.

꾸물거림과 미루기를 극복하려면 단서와 보상을 새롭게 설계하고, 자신의 감정을 다루어야 한다.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하지말고 관계적 자원을 활용하는 다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좋은 습관은 의지만으로 만들어지지 않으며, 우리는 모두 조금씩 나쁜 습관을 가지고 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떻게 다루고 개선해 가느냐 이다.



[프로필] 정혜인

심리학자 출신의 그는 국내 최초로 온라인 심리지원 전문 기업 '플리마인드'를 설립하며 주목을 받았다. 플리마인드는 정신건강 상태를 스스로 진단하고 모니터링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하고, 자가 정신건강 관리를 위한 다양한 콘텐츠 제작에 주력하고 있다.


현재 그는 주식회사 플리마인드의 대표를 맡고 있으며, 사단법인 한국심리건강진흥원 이사장으로서 정신건강 증진을 위한 공익 활동에도 힘쓰고 있다. 또한 서울사이버대학교 겸임교수로 활동하며 후학 양성에도 기여하고 있다.


이 외에도 한국IT여성기업인협회 수석부회장으로서 여성 기업인의 성장을 지원하고 있으며, AI윤리협의체 의장으로서 인공지능 시대의 윤리적 가치 정립을 위한 논의에도 앞장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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