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신아 신장내과 교수, 다낭성 신장질환 관리 늦으면 신부전까지

  • 부동희 기자
  • 발행 2025-12-29 11:17

▲ 반복되는 옆구리 통증과 혈뇨의 원인이 될 수 있는 상염색체 우성 다낭성 신장질환은 유전으로 발생해
신장 기능을 점차 떨어뜨리는 질환이다. [사진=셔터스톡]

외래 진료실에서 반복적인 옆구리 통증과 혈뇨를 호소하는 환자들을 종종 만난다.


30대 중반의 한 여성 환자 역시 몇 년간 같은 증상으로 여러 병원을 전전했지만, 정확한 원인을 찾지 못했다.


그러다 시행한 CT 검사에서 신장에 수십 개의 낭종이 발견됐고, 가족력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어머니가 과거 다낭성 신장질환을 앓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 환자가 진단받은 질환은 ‘상염색체 우성 다낭성 신장질환(ADPKD)’이었다.

신장은 혈액 속 노폐물을 걸러 소변으로 배출하고, 체내 수분과 전해질 균형을 조절하는 중요한 장기다. 동시에 혈압 조절 호르몬을 생성하는 역할도 맡고 있어, 신장 기능 저하는 전신 건강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신장에 물집 형태의 낭종이 다수 생기고, 시간이 지날수록 낭종이 커지면서 정상 신장 조직을 압박해 기능을 떨어뜨리는 질환이 바로 상염색체 우성 다낭성 신장질환이다.

이 질환은 유전성 질환으로, 부모 중 한 명에게서 폴리시스틴 단백질 생성에 관여하는 유전자(PKD1 또는 PKD2)에 이상이 있을 경우 자녀에게 50% 확률로 유전된다.


유병률은 약 1,000명당 1명으로 추정되며, 비교적 흔한 유전성 신장질환에 속한다. 문제는 진행 속도가 느려 초기에는 증상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실제로 상염색체 우성 다낭성 신장질환은 소아기에 발견되는 경우가 드물고, 대부분 20대 이후 서서히 진행된다.


초기에는 낭종의 크기와 개수가 적어 특별한 증상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질환에 대한 인지도가 낮아 검사 기회를 놓치고, 상당히 진행된 뒤에야 진단받는 사례도 적지 않다.

초기에 가장 흔하게 동반되는 증상은 고혈압이다. 신장 기능이 아직 비교적 유지되고 있는 시기에도 고혈압이 나타날 수 있어, 중요한 경고 신호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후 낭종이 커지면서 주변 조직을 압박하거나 요로결석이 동반되면 혈뇨와 옆구리 통증이 나타날 수 있다.


40~50대에 접어들어 낭종이 급격히 커지면 신장 기능 저하가 본격화되고, 약 절반의 환자는 60세 전후에 투석이나 신장이식이 필요한 말기 신부전 단계로 진행한다.

진단은 비교적 명확하다. 가족력이 있는 경우에는 복부 초음파 검사만으로도 진단이 가능하다.


유전자 검사는 반드시 필요한 검사는 아니지만, 가족력이 없는데 다낭성 신장질환이 의심되거나 임신·출산과 관련한 유전 상담이 필요한 경우에는 도움이 될 수 있다.

치료의 핵심은 ‘완치’가 아니라 ‘진행 속도를 늦추는 것’이다. 무엇보다 철저한 혈압 관리가 중요하다.


수축기 혈압 130mmHg, 이완기 혈압 80mmHg 이하를 유지하는 것이 신장 손상을 늦추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현재 국내와 미국 FDA에서 승인된 유일한 치료제인 톨밥탄은 낭종의 성장과 신기능 저하 속도를 늦추는 효과가 입증돼, 질환 진행 위험이 높은 환자들에게 사용되고 있다.

생활 관리도 매우 중요하다. 걷기나 실내 자전거와 같은 가벼운 유산소 운동은 혈압 조절에 도움이 된다.


충분한 수분 섭취와 저염식 역시 필수적이다. 수분 섭취는 낭종 성장을 촉진하는 바소프레신, 즉 항이뇨호르몬 분비를 억제해 질환 진행을 늦추는 데 기여한다.

상염색체 우성 다낭성 신장질환은 완치가 쉽지 않은 희귀 유전질환이지만, 조기 진단과 꾸준한 관리로 신부전으로의 진행을 늦추고 합병증을 예방할 수 있다.


가족력이 있거나 원인 모를 고혈압, 반복되는 혈뇨와 옆구리 통증이 있다면, 한 번쯤 신장 검사를 받아보길 권한다. 조기에 알수록 선택지는 분명히 넓어진다.


▲ 이신아 이대목동병원 신장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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