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는 빠르게 고령화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5년이면 전체 인구의 20%가 65세 이상인 ‘초고령사회’로 진입한다. 이에 따라 정부와 지자체는 장기요양보험 제도를 통해 거동이 불편하거나 치매 등으로 도움이 필요한 노인들에게 방문요양 서비스를 지원하고, 노인맞춤돌봄서비스를 통해 독거노인·고령 부부 등 취약계층을 돌보고 있다.
하지만 이 체계 안에도 보이지 않는 돌봄 공백이 존재한다. 바로 ‘건강하지만 도움이 필요한 노인들’이다.
“건강하다고 돌봄이 필요 없는 건 아니다”
실제 현장에서는 이런 사례가 자주 보고된다.
사례1.
80대 초반의 남편과 함께 사는 70대 후반의 김씨는 하루에도 두 시간 이상씩 산을 다니면서 운동을 할만큼 건강하다. 그러나 건강하다고 해서 모든 일을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얼마전 집안의 LED전등 7개가 나갔는데, 막상 전등을 사려고 하니 사이즈며 조명의 색을 알 수 없어서 어려움을 겪었다. 멀리 사는 자녀에게 사진을 보내 택배로 조명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다음이 문제였다. 그 조명을 갈아 줄 사람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경비가 상주하지 않는 아파트인 관계로 경비를 부를 수도 없고, 직접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주민센터를 찾아가 도움을 청할 수 있나 물어보았지만, 그런 도움은 줄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그는 '노인들이 건강하다고 해서, 이런 일 까지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도움이 필요한데, 부탁할 곳이 없어 난감했다.' 고 말했다.
자녀들이 모두 출가해 혼자 사는 70대 노인은 일상생활은 스스로 가능하지만, 전등이 나가면 사다리를 오르기 어렵고, 스마트폰 사용이 익숙하지 않아 관공서 민원이나 은행 업무를 보기도 힘들다. 약 복용 시간을 자주 잊어버리거나, 병원 예약을 놓치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은 “스스로 생활이 가능하다”는 이유로 장기요양 등급을 받지 못한다. 결국 건강하다는 이유로 어떤 지원도 받지 못하는 ‘돌봄의 사각지대’로 남게 된다.
이런 공백을 메우기 위해 최근 ‘노인 심부름 센터’ 라는 새로운 형태의 지원 모델이 주목받고 있다.
이 센터는 단순한 심부름 대행 서비스가 아니라, 노인의 일상 자립을 돕는 생활 보조 플랫폼이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일상 속 작은 도움, 큰 돌봄이 되다
사례 2.
70대 후반의 오씨는 국가에서 생활지원금을 준다는 뉴스를 들었으나, 어디에 가서 어떻게 신청하는지를 몰라서 매우 난감해 했다고 말했다. 신청하는 기간 중에, 생년에 따라서 신청하는 날짜가 다르다는 것을 듣기는 했으나 자세한 내용을 알지 못해서 누구한테 물어보기가 어려웠다.
스마트폰으로도 신청할 수 있다고 하는데, 스마트 폰은 있으나 신청법을 몰라서 스마트폰은 무용지물이었다. 멀리사는 자녀가 폰으로 알려주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런 때 부르면 달려오는 신원이 확실한 사람이 있어서 스마트폰도 좀 배우고, 은행이나 관공서 동행을 했으면 좋겠다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노인 심부름 센터는 주로 지자체, 사회적 기업, 지역 복지관, 민간 복지센터가 중심이 되어 운영한다. 그러나 이는 전국적으로 운영하는 것은 아니어서, 지역마다 차이가 있다.
주요 서비스는 △전등 교체·수리 △공공기관 동행 △은행·병원 업무 지원 △처방전 전달 및 약 수령 △스마트폰 사용 교육 △말벗 서비스 등이다.
그 외에도 매일 규칙적인 전화로 안부를 묻거나, 간단한 가사활동을 지원하긷조 하고, 장보는데 동행하고, 주거환경을 개선하여 가구나 가전기구 사용을 쉽게 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런 지원은 단순 편의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고령층에게 ‘혼자가 아니라는 심리적 안정감’ 을 주고, 사회적 고립을 예방하며, 작은 위험(낙상, 질병 방치)을 미연에 막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에는 지역 내 자원봉사자나 시니어 일자리 사업과 연계해, 어르신이 어르신을 돕는 구조로 운영되는 곳도 있다. 이런 상호 돌봄 구조는 고용 창출과 사회 참여 확대라는 이중 효과를 낸다.
해외에서는 이미 일상화된 ‘생활형 노인 돌봄’
해외에서는 이러한 개념이 이미 다양한 형태로 자리 잡고 있다.
미국·캐나다의 Assisted Living은 신체적으로 독립적인 노인이 공동 주거 공간에서 기본적인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는 형태이고, Home Caregiver는 가정에 간병인이 방문해 가벼운 심부름이나 생활 지원을 제공한다.
영국에서는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Community Care Service를 통해 은행 업무, 약 배달, 세탁·쇼핑 지원 등을 제공하며,
일본의 경우 '생활지원 코디네이터 제도' 를 통해 지역사회 주민들이 건강한 노인을 대상으로 소소한 도움을 주고받는다.
이처럼 외국에서는 노인의 ‘신체적 의존도’보다 ‘생활 편의와 사회적 연결’을 중시하는 돌봄 체계가 발전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노인 심부름 센터는 그 초입에 서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돌봄의 개념을 ‘치료’에서 ‘생활 지원’으로
이제 돌봄은 병이나 의존 상태에 국한된 개념이 아니다.
누군가의 도움이 없어도 생존은 가능하지만, 도움이 있을 때 삶의 질이 높아지는 단계의 돌봄이 필요하다.
전등 하나를 갈아주고, 스마트폰을 가르쳐주고, 약을 제때 챙겨주는 일. 그 사소한 일이 노인의 자존감을 지키고, 고립을 예방하며, 노년의 우울을 막는다.
건강하다고 해서 외로움이 없는 건 아니다. 노인 심부름 센터는 그 간극을 메우는 새로운 형태의 사회안전망이 될 수 있다.
결국 노인 심부름 센터의 운영은 복지의 확장이자, 품격 있는 고령사회의 상징이다.
돌봄이 필요한 사람에게만이 아니라, '도움이 있는 삶을 원하는 모든 노인'에게 손을 내미는 것이 초고령사회로 향하는 한국이 반드시 고민해야 할 다음 단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