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무희씨, 어젯밤에 도라미씨랑 뭐했나요? - 해리인가 망상인가

'이 사랑 통역 되나요?' 의 낮의 차무희와 밤의 도라미
드라마 속 분열된 자아를 정신의학적으로 읽다
  • 오혜나 기자
  • 발행 2026-02-06 16:41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본 기사는 드라마 속 인물을 정신의학적 개념에 비추어 해석한 문화적, 서사적 분석입니다. 실제 임상적 진단이나 치료를 대체하거나 그 자료가 될 수 없습니다.]

최근 전 세계인에게 사랑받으며 스트리밍 되고 있는 드라마 '이 사랑 통역 되나요?'는 주인공 차무희의 심리 상태를 중심으로 해리성 장애와 망상의 경계를 질문한다. 극 중 배우인 차무희는 자신이 출연했던 영화가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면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그 순간, 자신이 주인공으로 출연했던 영화의 좀비 캐릭터 ‘도라미’를 보게 된다.
처음에는 그냥 보이기만 했을 뿐인 '도라미'는 어느 순간 그에게 말을 걸고, 점점 출현 빈도가 높아지더니 차무희의 생각에 영향을 미친다. 급기야 밤이 되면 '도라미'로 변해 모든 것을 해결 해 주겠다며 '차무희' 일 때는 상상도 못하는 행동을 한다. 다음 날 아침이 되면 '도라미'로 사람의 마음을 헤집고, 도시를 배회했던 기억은 남아 있지 않아, 차무희는 괴롭거나 피곤한 아침을 맞이한다. 이것을 아는 사람은 오로지 남자 주인공 일 뿐이다.

이렇게 한 사람의 몸에서 둘 또는 그 이상의 인격이 존재한다는 설정은 흔히 해리성 정체성 장애를 연상시킨다.
기억의 단절, 행동의 전환, 인격 간의 차별성은 다중인격을 다룬 기존 영화와 드라마에서 반복적으로 사용돼 온 장치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차무희의 상태를 '해리성 장애'가 아니라 ‘망상’으로 규정한다. 이러한 차무희의 상태는 해리장애일까, 망상일까.

기억이 끊긴다고 해서, 모두 해리는 아니다

해리성 정체성 장애(Dissociative Identity Disorder)의 핵심은 정체성의 분리다. 흔히 '다중인격'으로 알려져 있다. 이 장애의 핵심은 '정체성의 분리와 기억의 단절' 이다. 한 사람의 몸에 있는 각각의 인격은 평소에는 큰 차이 없이 비교적 일관된 양상을 보인다. 그러나,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 되면, 다른 인격으로 분리되어 바뀐다. 중요한 점은 이 분리가 현실과 비현실을 자각하는 능력이 저하되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주로 반복적인 외상을 피하기 위한 방어 기제로 작동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대체로 어린 시절에 반복적으로 받았던 외상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이러한 증상을 보이는 캐릭터는 영화 '23아이덴티티' 속 케빈이 대표적이다.
23개의 인격은 서로 다른 말투와 취향, 심지어 각각 다른 신체 반응까지 가지고 있다. 그러나 케빈은 자신의 상태를 ‘누군가가 자신을 조종하고 있다’고 믿지는 않는다. 그는 ‘내 안에 다른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제한적으로만 인식할 뿐이다.

반면 차무희는 다르다. 그는 '도라미'를 '본다'. 도라미는 차무희의 내면에 머무는 인격이라기보다, 외부에 실재하는 존재처럼 지각된다. 말을 걸고, 지시하며, 때로는 차무희를 압도한다. 이는 정체성의 분리보다는 사고와 감정이 현실로 투사되는 정신병적 경험에 가깝다.

‘도라미’는 또 다른 인격이 아니라, 외상이 만든 형상 (여기서부터 드라마의 반전부분 스포일이 될 수 있습니다.)

극 후반부에 드러나는 설정은 이러한 해석을 강화한다. 밤마다 등장하던 '도라미'는 허구의 캐릭터가 아니라, 차무희가 어린 시절 겪었던 심각한 외상의 잔상이다. 극 중 차무희의 어머니는 남편을 독살하려 했고, 어린 딸에게까지 생명의 위협을 가했다. 차무희는 도망쳐 살아남았고, 이후 그 사건을 잊은 것이 아니라, 기억하고 있으면서도 ‘모르는 척’ 살아왔다. 친척의 손에 길러지면서 갖고 싶은 것을 갖지 못하고, 사랑받고 싶지만, 갈구하지 못하는 인물로 성장했다.

드라마는 이를 기억 상실이나 무의식적 해리로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생존을 위한 회피와 억제가 장기간 지속된 결과로 묘사한다. 성인이 된 이후 차무희 앞에 나타나는 '도라미'는 독립된 인격이라기보다, 어린시절의 외상으로 인한 기억이 성인이 되어 해소되지 못한 채, 현재의 자아인 차무희를 침범한 상징적 존재다. 특히 '도라미'가 차무희 자신의 얼굴과 닮은 어머니였다는 설정은, 차무희에게 외상을 입힌 대상인 어머니와 피해를 입은 자신을 동일시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것은 외상 후 반응의 특징인 왜곡된 재경험과 맞닿아 있다.

이러한 양상은 정체성의 분리보다는 현실 인식의 변형이 두드러진다. 정신의학적으로는 외상 후 스트레스 반응에 망상적 요소가 결합된 상태로 해석될 여지를 남긴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그렇다면 조현병이나 섬망일까

망상과 환각이 등장하면 조현병을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조현병은 사고의 와해, 언어의 붕괴, 정서적 무감동 등 전반적인 기능 저하를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드라마 속 차무희는 사회적 기능을 유지하고 있으며, 증상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안정적인 사랑을 받고 싶어하는' 이라는 특정 주제와 서사에 집중되어 있다.

섬망 역시 가능성은 낮다. 섬망은 급성 의식 장애로, 주의력 저하와 지남력(자신이 처한 공간, 시간, 대상을 구체적으로 인지하는 능력. 이 인지를 상실하면 오늘이 며칠인지, 몇 시 인지, 나와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인식하지 못한다.) 장애가 핵심이다. 차무희의 상태는 급성 혼란이 아니라, 반복적이고 구조화된 외상 재경험에 가깝다.

결국 이 인물은 하나의 진단명으로 설명되기보다는, 외상이 어떤 방식으로 현실 인식을 변형시키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읽힌다.

망상에서 ‘도망친다’는 말의 의미

극 중 차무희는 자신이 겪는 상태를 망상이라 인식하며, “이 망상으로부터 힘써 도망치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임상적으로 망상은 의지로 통제하거나 회피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치료는 항정신병 약물과 정신치료를 병행하며, 특히 외상과 연관된 경우에는 기억의 재구성과 정서 조절을 목표로 한 접근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드라마가 ‘도망’이라는 표현을 선택한 것은, 치료 이전에 자신의 상태를 인식하려는 시도를 상징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장치로 보인다. 망상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그것을 지워내는 일이 아니라, 그 망상이 어떤 경험에서 비롯되었는지, 살아남기 위해 자신이 애써 지우려 하고, 지우는 척 했던 과거의 상처와 사건에 직면하는 과정에 가깝다.

망상은 왜 의지로 통제되지 않는가

망상이 의지로 조절되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단순한 생각이나 해석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망상은 현실 판단을 담당하는 인지 체계 자체가 변형된 상태에서 형성된다. 즉, 잘못된 믿음을 ‘고치려는 노력’이 통하지 않는 것은, 그 믿음이 개인에게는 이미 현실로 경험되기 때문이다. 반증이나 설득이 오히려 불안을 증폭시키거나, 망상을 강화하는 결과로 이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특히 외상과 연관된 망상은 기억, 감정, 신체 반응이 분리된 채 저장된 상태에서 재활성화된다. 이 경우 망상은 과거 사건에 대한 해석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의 위협으로 지각된다. 차무희가 도라미를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마주친다’고 느끼는 설정은 이러한 외상 기반 망상의 특성을 반영한다. 이처럼 망상은 의식적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처리되지 못한 경험이 현실의 인식을 침범한 결과에 가깝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외상과 망상이 결합된 경우의 치료 접근

외상과 망상이 결합된 상태의 치료는 단일한 방법으로 해결되기 어렵다. 우선 망상적 사고와 지각 이상이 두드러질 경우, 항정신병 약물 치료가 고려된다. 이는 증상의 강도를 낮추고, 현실 검증 능력을 일정 부분 회복시키는 데 목적이 있다. 다만 약물은 원인을 제거하기보다는, 증상을 조절하는 수단에 가깝다.

이후에는 정신치료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외상 기억이 명확히 존재하는 경우, 치료의 핵심은 기억을 ‘되살리는 것’이 아니라, 안전한 맥락 안에서 재구성하는 데 있다. 외상 중심 치료에서는 감정 조절, 신체 감각 인식, 현재와 과거의 구분을 우선적으로 다룬다. 이는 외상이 다시 망상이나 환각의 형태로 재현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과정이다.

중요한 점은, 치료가 반드시 ‘도라미를 없애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도라미가 어떤 기능을 해왔는지, 어떤 감정을 대신 표현해 왔는지를 이해하는 과정이 치료의 일부가 된다. 이는 외상 이후 형성된 증상을 제거해야 할 적이 아니라, 해석해야 할 신호로 다루는 접근이다.


진단을 넘어, 외상을 다루는 방식에 대한 질문


차무희의 사례는 특정 진단명을 맞추는 문제로 단순히 이야기하기 어렵다. 드라마가 해리성 장애 대신 망상을 선택한 것은, 인격의 분리보다는 외상이 현실 인식에 개입하는 과정을 강조하기 위한 선택으로 보인다. 

외상은 기억으로만 남지 않는다. 때로는 인격의 일부처럼, 때로는 현실을 침범하는 믿음의 형태로 현재에 재현된다. 드라마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정신질환을 극적인 장치로 소비하기보다, 외상이 어떻게 증상으로 변형되는지를 보여준다.

차무희의 분열은 병리이자 생존의 흔적이다. 그리고 이 설정은 해리와 망상의 경계가 얼마나 복잡한지, 또 그 경계를 다루는 데 얼마나 신중한 접근이 필요한지를 환기시킨다. 이는 진단의 문제가 아니라, 외상을 이해하는 방식에 대한 질문에 가깝다.



참고자료
■ 해리성 장애 / 외상 / PTSD
대한신경정신의학회 | 『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 편람 제5판(DSM-5) 해설서』학지사, 2016.
김정범 외 | 「해리성 정체감 장애의 임상적 특징과 외상 경험」신경정신의학, 대한신경정신의학회, 2014.
김현택, 이수정 |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서 해리 증상의 역할」한국심리학회지: 임상, 2012.

■ 망상, 현실검증, 정신병적 경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 『조현병 스펙트럼 및 기타 정신병적 장애』 정신의학 교과서 제6판, 2022.
박영민 | 「망상의 형성과 현실 검증 장애」신경정신의학, 2010.
정인과 외 |「외상 경험과 정신병적 증상의 연관성」 정신의학연구, 2017.

■ PTSD + 정신병적 증상 / 감별 진단
이민수, 김재진 |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서 나타나는 환각과 망상」대한불안의학회지, 2015.
대한불안의학회 | 『외상 관련 장애 진료지침』2020 개정판.

■ 치료 접근 (약물 + 정신치료)
김용식 | 「외상 중심 치료의 실제와 한계」정신치료, 2019.
이정현 | 「정신병적 증상을 동반한 외상 환자의 치료 전략」신경정신의학,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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