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되면 왜 이렇게 아무것도 하기 싫을까
햇빛이 줄어들 때 몸과 마음에 생기는 변화들

출근 준비를 하면서도 몸이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충분히 잠을 잤는데도 하루 종일 졸리고, 업무에 집중하기가 어렵다. 예전에는 자연스럽게 해내던 일들이 괜히 버겁게 느껴진다.
직장인 김모 씨(34)는 “겨울만 되면 의욕이 뚝 떨어지고, 아무 이유 없이 기분이 가라앉는다”며 “괜히 내가 나약해진 것 같아 스스로를 탓하게 된다”고 말했다. 매년 비슷한 시기에 반복되는 이 무기력감은 단순한 기분 문제일까.
많은 사람들이 겨울철 나타나는 이런 변화를 ‘계절을 탄다’는 말로 가볍게 넘긴다.
하지만 겨울에 유독 피로하고 울적해지는 데에는 분명한 생리적 이유가 있다. 일조량 감소는 우리 몸의 호르몬 분비와 생체리듬을 변화시키고, 그 영향은 기분과 에너지 수준 전반에 나타난다.
흔히 말하는 ‘겨울 우울’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환경 변화에 대한 신체의 자연스러운 반응에 가깝다.
햇빛이 줄면 왜 더 무기력해질까
겨울이 되면 낮 시간이 짧아지면서 햇빛 노출이 급격히 줄어든다. 햇빛은 기분을 안정시키는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 분비를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일조량이 감소하면 세로토닌 분비도 함께 줄어들고, 반대로 수면을 유도하는 멜라토닌 분비는 증가한다.
이로 인해 하루 종일 졸리고 몸이 무거운 느낌이 지속되기 쉽다. 아침에 일어나기가 어려워지고, 낮 동안 집중력과 활동성이 떨어지면서 자연스럽게 무기력감이 커진다.
실내에서 장시간 근무하거나 야외 활동이 적은 직장인일수록 이런 변화를 더 민감하게 체감하는 경우가 많다.

이 같은 계절적 우울감은 개인의 느낌에 그치지 않는다.
보건복지부 국립정신건강센터가 10월 31일 발표한 ‘국가 정신건강현황 보고서 2024’에 따르면, 2023년 우리나라 성인의 우울감 경험률은 11.6%로 나타났다.
성인 10명 중 1명 이상이 최근 1년 동안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의 슬픔이나 절망감을 최소 2주 이상 경험했다는 의미다.
월별 통계를 보면 계절적 영향은 더욱 뚜렷하다. 우울감 경험 인원은 11월이 약 45만5000명으로 가장 많았고, 12월(45만3000명), 10월(45만2000명)이 뒤를 이었다.
기온이 떨어지고 햇볕 노출이 줄어드는 시기일수록 우울감이 두드러지는 경향을 보인 것이다. 겨울철 무기력과 우울이 결코 드문 현상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매년 반복된다면 ‘계절성 우울증’ 의심해야
가을이 깊어지고 겨울로 접어드는 시기에 유난히 기분이 가라앉고 무기력해지는 증상이 반복된다면, 단순한 계절 감정이 아니라 계절성 우울증을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계절성 우울증은 특정 계절에 우울 증상이 나타났다가 다른 계절에는 호전되는 특징을 보이는 질환으로, 주로 가을과 겨울에 시작돼 봄이 되면 완화된다.
낮 시간이 짧아지면서 세로토닌 분비는 감소하고, 멜라토닌 분비는 과도해지면서 기분 저하, 무기력, 집중력 저하, 수면과 식욕 변화 등이 나타난다.
일반 우울증과 달리 수면 시간이 늘고 단 음식이나 탄수화물에 대한 욕구가 커지며 체중이 증가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특히 여성에게서 더 흔하게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변화를 ‘기분 탓’으로만 여기고 방치할 경우 증상이 길어지거나 만성 우울증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전문가 “단순한 계절 타기로 넘기지 말아야”
메디소비자뉴스에 따르면, 조현식 성모연정신건강의학과 원장은 “계절성 우울증은 단순히 날씨 때문이라고 가볍게 넘길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기분 저하, 의욕 상실, 수면 및 식습관 변화가 2주 이상 지속되거나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친다면 반드시 전문적인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 원장은 또 “계절성 우울증은 생체리듬 변화 외에도 개인의 스트레스 상황, 유전적 요인, 수면 패턴 불균형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한다”며 “최근처럼 사회적 불안이나 경제적 압박감이 큰 시기에는 증상이 더 악화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생활 관리와 치료, 함께 접근해야
계절성 우울증 치료에는 약물치료, 광치료, 인지행동치료 등이 활용된다.
특히 광치료는 인공적인 밝은 빛을 통해 부족한 일조량을 보완해 세로토닌 분비를 촉진하는 방법으로, 아침 시간대에 일정 강도의 빛을 쬐는 것이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생활습관 관리도 중요하다. 규칙적인 기상과 취침 시간 유지, 낮 시간대 햇빛 노출, 가벼운 운동은 생체리듬 회복에 도움이 된다. 스마트폰 사용 증가로 실내 생활 시간이 길어지고 수면의 질이 떨어진 최근 환경은 계절성 우울증을 더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조 원장은 “아침에 햇빛을 쬐며 산책하거나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는 것만으로도 생체리듬 회복에 도움이 된다”며 “생활습관 교정과 함께 필요 시 항우울제나 광치료를 병행하면 대부분 호전될 수 있다”고 말했다.
겨울철 반복되는 무기력과 우울은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뇌의 생리적 변화에서 비롯될 수 있다.
짧아진 햇빛과 위축된 활동량 속에서도 자신의 감정 변화를 세심하게 살피고, 필요할 때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건강한 겨울을 보내는 첫걸음이다.
겨울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계절이지만, 적절한 관리와 이해를 통해 충분히 건너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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